음식 이야기

당신은 커피 몇단?

오드리튜튜 2007. 9. 21. 14:20


마시는 기호음료 커피. 커피가 생각날 때 마실 수 있고 입 안에 커피 향이 그윽한 채 나의 일을 몰두할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커피에 푹 빠지면서부터 커피를 마시는 일 만큼이나 바쁜 일이 생겼다. 커피를 마실수록 더욱더 커피가 알고 싶었다. 미지의 커피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부족한 커피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막연히 커피의 실체도 모른 채 찾아 나섰던 그 시절…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된다'는 격언처럼 지금은 나도 모르는 사이 호랑이 굴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호랑이 굴에서 사는 맛이 어때?”라고. 그때마다 “아직 호랑일 만나지 못했어…”라고 말한다.

커피는 단순히 마시는 기호음료인데 뭐 그리 복잡하게 알 필요가 있을까? 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음료와는 다르게 맛있는 커피를 찾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맛있게 커피를 만들고, 맛있는 커피를 찾는 일은 평생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커피를 마실 때는 느꼈던 쓴맛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왜 이런 것을 돈 주고 사 먹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가졌던 커피.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반복된 커피 마시기로 입안의 미각 돌기가 살아났는지 맛있는 커피 집을 찾기를 몇 년….

'이젠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내가 직접 만들자'라고 시작한 ‘커피 드립과 로스팅’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한 일이었다. 마치 호랑이 굴속의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빈손으로 가는 것처럼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얼마 전 커피 관련 인터넷 카페를 검색하던 중 커피를 좋아하는 어느 네티즌이 올린 글이었는데 ‘커피 매니아 구별 법’으로 참 재미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정도를 바둑과 같은 등급으로 18급부터 5단까지 구분을 했는데, 각 등급별로 적힌 내용을 보고 오래 전의 커피에 미쳤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터넷에 올려진 커피 매니아로 가는 등급을 조금 살펴보면, 먼저 ‘18급: 인생은 달고 커피는 쓰다.’ 과연 그럴까?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어야 하니까 그렇겠구나 공감이 간다.

‘14급: 나 커피 좋아해요. 제일 좋아하는 커피는 헤즐넛 커피.’, ‘11급: 커피 하우스에 가면 블루마운틴만 마신다. 그게 제일 좋다면서…’, ‘9급: 커피는 연하고 블랙으로 마셔야 제격이다.’, ‘6급: 커피는 주로 알커피로 구입해서 집에서 갈아 마신다.’,
‘4급: 특별하게 커피가 맛있는 집을 몇 군데 알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가며 주인에게 오늘 무슨 커피가 좋은지 물어 보고 가급적 그걸 선택한다.’, ‘1급: 연한 커피든, 에스프레소 커피든 갓 볶아 신선하면 다 좋다.’,
‘초단: 커피만 있다면 하루에 두 세 번은 드립이나 에스프레소 포트로 커피를 뽑아 먹는다.’, ‘4단: 커피를 추출할 때, 자주 물과 내가 하나가 된 느낌이 들고는 한다.’, ‘5단: 어떤 커피든 커피 맛만 보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무슨 커피인지 알아 맞힌다.’ 참 재미있다. 참으로 그 시점의 상황들과 절묘하게 맞는다.

나의 커피는 어두운 동굴에서 아직도 호랑일 만나지 못했다. 가끔은 포효하는 호랑이 소리를 듣곤 하지만 잡질 못했다. 호랑이를 만나면 단숨에 잡으려는 다짐은 한결같다. 그래서 오늘도 호랑이 잡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럼, 난 지금 매니아 등급의 어디에 와 있을까? “도대체 입단을 하긴 한 거야?” 세월이 흐른 지금, 18급 시절이 마냥 그립다.

글 : 이병규 /건축사, 커피아뜨리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