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한 파래무침, 밥도둑이 따로 없네 |
서울 가는 날이면 영화도 한 편 보고, 이곳저곳 쇼핑도 한다. 수많은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복잡하기는 해도 시골생활에서 못 느끼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본다. 애들과 하룻밤을 묵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가 말을 꺼냈다. "여보, 모래내시장 들렀다 갈까? 거기엔 가격도 싸고 없는 게 없어요." 강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래내시장이 있다. 우리 애들이 사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가끔 들른다. 시장 골목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상가번영회에서 내건 환영 현수막이 보인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장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시장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먹었던 맛,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보, 꼬막 좀 사다 먹자." "난 별로인데. 새파란 파래가 나왔네!" "파래?" "새콤달콤하게 무쳐먹으면 맛이 좋아요." 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것 같은 연초록색의 빛깔이 선명하다. 내가 아주머니께 가격을 물었다. "파래는 어떻게 팔아요?" "세 뭉치에 천원이에요." 나는 두말없이 파래 값을 치렀다. 이렇게 싼 값으로 신선한 바다내음 풍기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싶다.
아내가 김 한 톳을 사야 한다며 김 가게를 찾는다. "아주머니, 파래김 있어요?" "파래 섞인 김이 있기는 있는데, 좋은 김을 찾지, 웬 파래 김이에요?" "우린 파래가 많이 섞인 김이 더 맛있는 걸요." "보아하니 옛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주머니가 아내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파래김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보다. 원래 김은 파래가 섞이지 않은 것을 더 쳐준다. 빛깔이 검고 광택이 나야 최상품이다. 하지만 값도 싼데다 향과 맛이 좋아 파래김 맛을 아는 사람은 파래김만 찾는다. 한 장을 찢어 맛을 본 아내가 괜찮다며 셈을 치른다. 아내는 가끔 예전에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하는지 좀 고리타분한 구석이 있다. 파래김만해도 그렇다. 파래김은 감칠맛은 좀 덜하지만, 산뜻한 바다내음의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도 김에 대한 추억이 많다. 내가 클 때도 김을 쟁여놓고 먹을 수 있었던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 한 장이면 밥 한 그릇을 먹고도 남았다. 우리가 사는 고향에서는 김을 '해우'라고 불렀다. 석쇠에 얹어 화롯불에 김을 구우면 온 집안이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찬다. 고소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식욕은 동한다. 또, 참기름을 떨어뜨린 간장에 밥을 싸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예전 우리 어머니처럼 값싼 파래에다 김 한 톳을 사서 든 아내가 무척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내 손맛은 어머니도 알아주실 걸요!" 집에 돌아와 아내가 파래를 가지고 어떻게 요리를 할까 궁리를 한다. 결국, 어렸을 적 친정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파래무침을 할 모양이다. 아내가 무 하나를 꺼내오라고 한다. 우리 집은 김장철에 남긴 무를 땅에 묻어놓았다. 생선도 지져먹고, 멸치 무 조림도 해먹고, 생채도 해먹는데 참 요긴하다. "당신, 파래 무생채하려고?" "그럼요.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어보게요." 어떤 맛으로 저녁을 즐겁게 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무를 가져다주고 아내가 하는 부엌일을 지켜본다.
다음으로 무를 채 썬다. 당근도 음식의 색깔을 내기 위해 조금 썰어놓는다. 무생채에 물을 들이려고 고춧가루를 버무린다. 손질한 파래에 다진 파, 마늘을 넣은 뒤 식초를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친다.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맛을 본다. 달콤한 맛이 모자란다며 배를 약간 썰어놓는다. 아무래도 예전 맛이 나지 않은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지 말고 매실액을 좀 넣어 봐?" 아내가 매실액을 한 수저 떨어뜨린다. 맛을 또 본다. 이제야 제대로 맛이 나는지 얼굴표정이 밝아진다. 손으로 한 입 건네주며 맛을 보란다. 새콤달콤한 맛이 식욕을 돋운다. 천원으로 산 파래와 무생채로 버무려진 음식이 한 양푼 가득이다. 이렇게 푸짐할까? 밥 한 그릇이 어느새 뚝딱 비워진다. 아내에게 "오늘 만든 음식을 세상 뜨신 장모님께서 맛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물었다. 아내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한다. "모르면 몰라도 내 딸 손끝이 여물다고 하실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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