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이봉래님에 단애

오드리튜튜 2007. 9. 29. 14:23


밤이면 갈증처럼
기억의 피부 속에
매몰되어 가는
바다
어느날 바다는
으스러진 기억을 적시며
남아 있는 땅 속으로
돌아갈 때
그것은
치욕의 화석으로
굳어 간다.
무너져 내리는
밤의 밑바닥에
깔리고 쌓인
모래알보다 작은
인내의 거품
억만 낱알의 거품을 물고
이쪽과 저쪽에서
밀려오는
피 묻은 바람
그날밤
바다는 피로 얼룩진
거울 속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서반아의 투우처럼
거울 속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거울은 닫혀진 문이었다.
나는
바다를 찾아
문의 둘레를 달렸다
번득이는 칼보다
더 광채나는 거품을
입에 물고
다음날 나는
피묻은 바람 속에서
허물 벗는 배암처럼
남루한 피부를
비수로 도려 낸다

풍선처럼
날아가는 화석의 바다
기억의 활 시위를
하늘에 겨냥하면
문에 반사되는
금빛 태양
나는 달리고 있다
단애와 같은
거울 속을 달리고 있다
무량의 거품 속을
피붙은 바람처럼
넘어지며 일어서며
마냥
달리고 있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은미님의 보길도의 5월  (0) 2007.10.01
이광웅님에 달  (0) 2007.09.29
이성환님에 그믐달  (0) 2007.09.29
곽문환님의 촛불  (0) 2007.09.28
강정화님에 바느질  (0) 2007.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