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육이야기

훈육이야기 - 아동교육6

오드리튜튜 2007. 10. 26. 15:18




6. 밥상머리의 교육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세살박이 어린 누이동생을 잃고 한없이 울었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실은 딸 넷에 아들 둘을 합하여 6남매를 두었었는데 넷을 잃고 못난이 남매만 기르시게 되었다. 네 명의 자녀를 잃었으니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까? 그리하여 전가족이라야 부모님을 위시하여 모두 네 식구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매일같이 나무를 한 짐 하던가 꼴을 한 짐 하던가 아니면 다른 가사를 돌보는 것이 의무적인 일이었다.

늦은 봄이나 여름철 한참 바쁜 때는 새벽 일찍 일어나 식전일(아침식사 전에 일하는 것)을 돕고 학교에 가곤 했다. 그러니 아침식사나 저녁식사를 늦은 시간에 먹게 되는 것이 예사였다. 온 식구가 밥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께서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예절교육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곤 하였다. 이런 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전인 5-6세 때부터 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밥을 먹을 때는 먼저 어른들부터 한 분 한 분 공손하게 불러 진지 잡수시라고 말씀드리고 윗 어른들이 먼저 수저를 든 후에야 비로소 수저를 들되 소리나게 하지 말아야 하며 음식을 씹을 때 이를 보여서도 안 된다. 밥상 위에 고기나 기타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는 어른들이 잡수시도록 하기 위하여 손이 가서는 아니 되며 먹던 밥을 남겨서도 아니 된다. 물을 마실 때는 소리가 나도록 해서도 아니 되며 어른 앞에서 이를 쑤셔도 아니 된다. 또한 어른들이 출타하여 집에 돌아오시기 전에는 식사(주로 저녁식사)를 먼저 해서도 아니 되며 해가 지도록 돌아오시지 않을 때는 등불을 마련하여 출타하신 방향으로 마중을 가서 만나 뵙고 모시고 돌아와야 한다.

어른을 모시고 돌아올 때나 어른과 함께 여행을 할 때는 어른 앞에 먼저 나서서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도 아니 되고 반드시 어른들 뒤에서 중후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경청하여 좋은 점은 본받아야 하고 나쁜 점은 귀먹은 듯이 모른 체 하고 잊어야 하며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중간에 말을 가로막거나 다른 말로 하여금 어른의 말씀을 끊어지게 하여서도 아니 된다. 그밖에도 다른 어른들을 대하는 예절, 친구들을 대할 때의 태도, 일가간에 화목을 이루는 방법, 동기간에 우애하는 방법, 조상을 섬기는 일, 몸가짐, 말하는 태도와 방법, 자녀 기르는 방법 등등...

이렇게 밥 먹을 때 한 말씀 한 말씀 가르쳐 주신 어린 시절의 교육은, 아무리 오래 가도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자녀 기르는 방법론에서는 어른들 앞에서는 자식을 안아 주거나 등에 업어 주지 않는 법이며, 예쁘다고 웃음을 응대하거나 혀를 차서도 아니 된다, 또한 자식은 속사랑으로 키워야지 겉사랑으로 키워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항상 근엄하시어 안면에 웃음을 띄우시는 일이 없으셨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자아의식을 갖게 되면 제멋대로 행동하고 아무렇게나 말하고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 때에는 매를 들고 엄하게 종아리를 때려 반성하고 고쳐 나가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다. 나무도 어려서 굽었을 때는 곧게 자라도록 교정하기가 쉬우나 다 자라나서 크게 되면 휘어지지도 않고 휘었다 해도 바로 원위치로 돌아 가게 되어 교정할 수가 없다. 매한가지로 사람도 어렸을 때 잘못을 바로잡아 주어야지 기를 살린다고 방관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기 쉬운 것이다.

실로 필자는 어려서 무수하게 여러 번 매를 맞곤 했다. 그것도 필자 스스로 매를 마련하여 가지고 부친 앞에 나아가 종아리를 맞았는데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 매는 사랑의 매요, 값없는 보약의 매인 것이다. 경서에서도 말하기를 "독한 약은 입에는 비록 써서 먹기가 고약하나 병든 몸에는 이로운 것이요, 충고해 주는 말씀은 귀에는 듣기 싫으나 행동에 옮기면 자신에 이롭다."라고 하였다. 요즈음은 생활양식이 다양화되고 직업 양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고 해도 서로 마주 대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직장에 일찍 출근하여 저녁 늦게서야 귀가하고 자녀들은 그 험난한 입시지옥을 통과하기 위하여 아침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한 채 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로 학원으로 때로는 도서실로 연속적인 릴레이식 공부를 하다가 자정이 넘어서 돌아온다. 부모를 대면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지금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세대들은 그 세대들과 전혀 다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또한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족이 서로 모여 식사하는 시간을 만들어 귀여운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살아왔던 과정이나 이웃 친구들간에 보고들은 이야기, 또는 옛날 성현들의 참된 말씀을 들려주면 그보다 더 좋은 교육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류의 스승이신 맹자는 어떻게하여 만고에 잊혀지지 않는 훌륭한 스스이 되었는가? 그 훌륭한 스승 뒤에는 맹자보다도 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그 어머니께서 좀 더 자식을 훌륭히 키우고자 이사를 하였는데 이사간 곳이 바로 무덤에 가까웠다. 맹자가 무덤을 파고 묻는 놀이를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하거늘 그 어머님이 이 곳은 자식을 살게 할 곳이 아니라 하고 다른 곳으로 다시 이사를 가니, 저자거리라 장사꾼들이 물건을 놓고 사람을 상대로 물건을 흥정하는 광경만 보이는 지라 그 아들 맹자가 장사하는 것을 흉내내고 있거늘 또다시 이 곳도 자식 살게 할 곳이 아니라 하고 세 번째로 이사를 하였는데 그 곳은 글을 가르치는 훈장집 부근이었다. 맹자가 제사지내는 놀이며 진퇴하는 예절놀이를 하거늘 맹자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곳이야말로 가히 자식을 기를 만한 곳이라 하고 그 곳에 살면서 아들을 열심히 가르쳐 다른 학동들과 더불어 글을 배우게 하였다. 이것이 소위 맹모삼천지교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훌륭한 위인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 십만양병설을 주창했던 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인 이율곡(1536-1584)위 뒤에는 신사임당과 같은 명석하고 인자한 어머니가 있었으며 왕희지, 안진경의 필법을 익혀 해, 행, 초 등 각 체에 뛰어났던 서예가 한석봉(1543-1445)의 뒤에는 떡장수로서 뒷받침하며 떡썰기와 글씨 쓰는 것을 시합하여 학구열을 불러일으킨 어머니의 눈물어린 정성이 있었고, 무장으로서 세종 때 대마도 정벌 등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정승의 반열에 오른 최윤덕(1376-1445)의 뒤에는 '사람이 학문을 모르고 힘에 만 의지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용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지금 학문에 힘쓰지 아니하면 마음과 몸을 닦아 집안을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도리를 어찌 알 수 있으랴!'하면서 엄하게 꾸짖은 그의 부친 최운해(조선조 원종공신 지중추부사)의 훈도가 있었다.

교육이란 정말 콩나물에 물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라나는 콩나물에 물을 줄 때는 자라나는 것 같지 않으나, 계속하여 주다 보면 어느 새 싹을 틔우고 털을 내보이며 새하얀 몸체를 키워 나간다. 사람에 대한 인성교육도 똑같은 것이다. 가르치면 잊어버리고 또 가르치면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가르치는 것의 매우 적은 지분은 자신도 모르게 인성교육으로서의 성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교육이란, 지식교육과는 다른 개념이다. 인성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은 학교보다는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정에서는 한두 명의 자녀, 많아야 3명 내지 4명의 자녀가 아닌가? 부모가 생산한 그 소수 자녀의 인성교육을 어찌 한 번에 5-60명 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의 몫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생님들이 훈육을 하다가 혹시 체벌이라도 하면 폭력을 가했느니 구타를 했느니 하면서 학교로 몰려와 자녀 옹호론을 퍼부어 대는 학부형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선생님을 고발까지 한다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체벌을 하겠는가? 학생이 스승을 스승같이 대하지 않고 명령에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 아니던가?

필자의 경우 딸이 둘이요, 사내 녀석이 역시 두 명으로 요즘 시대로서는 많은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이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정통신문의 학부모 의견란에 이렇게 적어 보내곤 했다. '선생님 말씀을 거역하거나 학우들 간에 서로 싸울 때 또는 숙제를 게을리 하거나 수업태도가 나쁠 때 언제나 매로써 종아리를 때려 주십시오'라고 진심으로 부탁의 말씀을 드렸던 것이다. 인성교육이 잘된 바탕 위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접목될 때 참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치를 판단하고 현실세계를 비판도 하며 때로는 자가자신까지도 반성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력이나 비판의식 또는 자기를 반성하는 의식수준은 반드시 인간적 예의범절을 닦아 온 인성교육에 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후에 라야 정확해진다. 그 중에 하나라도 결함이 있을 때 그러한 상황에서의 가치판단이나 현실비판, 자기반성은 정확을 기할 수 없고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청소년의 폭력문제가 그러하고 이유 없는 자녀의 가출 문제가 그러하며 미혼모의 발생이 그러한 연유에서 오는 것이다. 밥상머리의 교육, 콩나물에 물주기 식의 교육을 한 주일에 한 번쯤은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자녀들의 미래의 꿈을 올바르게 실천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명랑하고 화목한 가정, 밝은 사회, 부강한 나라 건설의 역군들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세심하게 자녀들의 인성교육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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