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도종환님에 울타리 꽃

오드리튜튜 2007. 12. 14. 00:36


아들아, 나 죽어 이 집의 울타리가 되리라.
칼 뽑아 네 어미 아름다움 버혀 가려던
눈먼 무리 앞에 무릎 꿇 순 결코 없어
황망한 칼빛 아래 내가 죽거든
아들아, 억새풀 엉겅퀴 새 돌 눌러 날 묻지 말고
우리집 마당 가운데 나직하게 묻어다오.
혹 떨어져 나간 내 뼈 있거든
밤마다 숫돌에 갈고 갈아 화살촉 만들고
흩어져 날리는 머리칼 있거들랑
빠짐없이 추려 모아 화살줄 매어다오.
앞 못 보는 너희 아빌 핍박하러 오는 무리
날만 새면 사립문 앞에 눈 치뜨고 모이리니
내 어이 죽어선들 한적한 산그늘이나 떠돌며 다니리
아들아, 이 어민 속 붉은 꽃으로 꼭 다시 피어난다.
나 죽어도 내 집의 울타리꽃으로 피어난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기영님에 물의 역사  (0) 2007.12.14
노진선님에 한발로  (0) 2007.12.14
이승훈님에 지난날  (0) 2007.12.12
서정주님에 푸르른 날  (0) 2007.12.12
양왕용님에 남강  (0) 2007.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