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손동연님에 선에 대하여

오드리튜튜 2007. 11. 9. 01:40



청솔밭 길을 따라
청솔밭 길을 따라 뻐꾹 뻐꾹
선산에 들면 낮은 어깨 드러낸 잔풀들 너머로 연신 출렁여 오는
큰 무덤 작은 무덤 더 웃대 웃대꺼정의 생 엎드린
그 아득함이여 어서 온 어서 온
내 새끼야 덥석 손 잡아주던 밀양손공의 잔등 벗겨진 황토흙
바라보노라니 눈물난다 사람들아
이곳에 흐린 발 풀 때
그들 덕에 한 상 잘 받던 물아 나무야 풀벌레야 아는가
앞산 뒷산을 들었다 놓는 환장한 이 뻐꾸기 울음 속으로
징검징검 놓고 가는 저들의 둥두럿한 선을
아득하여라 이마 위로 하염없이
몇 채씩의 궁전을 세웠다가 허물고 다시 세우는 구름의 노동이
한창인 것을, 그게 뭐 별거냐고
베옷 한 벌 빌어 입고 잠시 들렀을 따름인 세상
어슬렁어슬렁 뒷짐지고 돌아서는구나 사람들아
저들이 벗어놓은 버선코의 선을 가면
거기 초가지붕이 대숲 아래 휘더니라
달빛도 창호 흰 살에 묵화 한 폭 치더니라
어딜 가나 만나는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의
우리나라 널 뛰는 남끝동치마도 흔들리는 댕기의 선도
연신 출렁여 오는 이 무덤의 선보다 더 깊고 그윽하랴
청자로도 백자로도 감히 어쩌지 못할 선이
선을 불러 업어 먹장빛 또 한 세상 넘어가고 있음을
바라보는 일 절로 흥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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